“세상은 무대, 사람은 배우”…연극과 현실을 넘나드는 ‘유령’이 하고 싶은 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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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02 13:17 조회 0회 댓글 0건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생에서 배씨, 정씨 그리고 다시 배씹니다. 무대에 섰으면 연극에서 맡은 역할을 말해야지 생은 무슨 생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배씨가 다시 배씨는 뭐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 근데 그렇게 말고는 달리 말을 못하겠습니다.
연극 <유령>에서 배명순 역할을 맡은 배우가 무대를 여는 대사다. 극 중 배명순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도망쳐 정순임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하지만,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돼 힘든 삶을 이어가다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죽음 이후 배명순은 ‘유령’이 되어 무대 위로 돌아와 자신처럼 지워진 존재들과 함께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극의 시놉시스다.
14년 만에 창작극을 선보이는 고선웅 연출은 무연고자에 대한 가슴 아픈 신문 기사를 보고 <유령>을 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어두운 내용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이어지는 소동극에 가깝다. 그렇다고 가벼운 코미디라기보다는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상한’ 연극이다.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쉬운 듯 하면서도 쉽지 않고, 간단한 듯 복잡한 작품”이라는 연출의 말이 보고나면 이해될 것 같다.
새카만 무대 위에는 비석이나 분골함을 떠올리게 하는 상자(연출 의도로는 얼음)가 줄지어 있고, 뒤편에는 영안실 냉동고가 있다. 이 무대는 시체 안치실에서 분장실, 그리고 <유령>이라는 연극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맞물리며 돌아간다.
이 무대 위에서 배명순은 정순임에서 다시 배명순으로, 불쑥 이야기 밖으로 튀어나와 10년 만에 연극을 하는 배우 이지하가 된다. 배명순을 괴롭히는 남편은 오씨와 박사장 등 다른 악역들까지 수행하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만을 품은 배우 강신구로서 말을 한다. 스태프인 분장사와 무대감독 역시 무대 위로 올라와 공연에 개입하고, 원래 배우 자신으로서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대에 머물기도 한다.
작품 내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은 자꾸만 실제의 자신으로 존재하며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된다. 이러한 <유령>을 압축하는 문장은 “세상은 무대고 인간은 배우다”이다.
고 연출은 “무연고자들이 ‘존재하지만 지워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배우가 무대에서 맡은 역할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인생 그리고 무대 그 자체에 대한 메타 연극으로 풀어낸 셈이다. 극 중 분장사 강시분 입장에서 하는 배우 전유경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분장사 시분이 역할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 들었어요. 내가 알던 배우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네. 칠한 다음에 변하는 거죠. 전혀 다른 사람으로. 그리고 분장이 지워지면 원래대로 돌아오고. 원래 그 사람인데 그렇게 달라지는 거잖아요. (…)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우리 모두 삶이라는 연극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다 막이 내리면 떠나는 것 뿐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 마땅하다”는 결론에도 이르게 되는 셈이다.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정신 없는’ 연극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덕분이다. 무대에서 현실의 나로 이야기하다 순식간에 무연고자의 딱한 삶에 몰입하는 배우들 덕분에 연극 <유령>은 무사히 결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사로 극이 닫힌다.
“세상은 무대, 사람은 배우. 가끔가다 유령도 있구나. 생긴 것은 사라지고 모인 것은 흩어지나니/제 아무리 후진 역할도/제 아무리 못난 역할도/결국은 다 퇴장이구나.”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22일까지.
연극 <유령>에서 배명순 역할을 맡은 배우가 무대를 여는 대사다. 극 중 배명순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도망쳐 정순임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하지만,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돼 힘든 삶을 이어가다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죽음 이후 배명순은 ‘유령’이 되어 무대 위로 돌아와 자신처럼 지워진 존재들과 함께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극의 시놉시스다.
14년 만에 창작극을 선보이는 고선웅 연출은 무연고자에 대한 가슴 아픈 신문 기사를 보고 <유령>을 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어두운 내용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이어지는 소동극에 가깝다. 그렇다고 가벼운 코미디라기보다는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상한’ 연극이다.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쉬운 듯 하면서도 쉽지 않고, 간단한 듯 복잡한 작품”이라는 연출의 말이 보고나면 이해될 것 같다.
새카만 무대 위에는 비석이나 분골함을 떠올리게 하는 상자(연출 의도로는 얼음)가 줄지어 있고, 뒤편에는 영안실 냉동고가 있다. 이 무대는 시체 안치실에서 분장실, 그리고 <유령>이라는 연극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맞물리며 돌아간다.
이 무대 위에서 배명순은 정순임에서 다시 배명순으로, 불쑥 이야기 밖으로 튀어나와 10년 만에 연극을 하는 배우 이지하가 된다. 배명순을 괴롭히는 남편은 오씨와 박사장 등 다른 악역들까지 수행하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만을 품은 배우 강신구로서 말을 한다. 스태프인 분장사와 무대감독 역시 무대 위로 올라와 공연에 개입하고, 원래 배우 자신으로서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대에 머물기도 한다.
작품 내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은 자꾸만 실제의 자신으로 존재하며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된다. 이러한 <유령>을 압축하는 문장은 “세상은 무대고 인간은 배우다”이다.
고 연출은 “무연고자들이 ‘존재하지만 지워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배우가 무대에서 맡은 역할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인생 그리고 무대 그 자체에 대한 메타 연극으로 풀어낸 셈이다. 극 중 분장사 강시분 입장에서 하는 배우 전유경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분장사 시분이 역할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 들었어요. 내가 알던 배우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네. 칠한 다음에 변하는 거죠. 전혀 다른 사람으로. 그리고 분장이 지워지면 원래대로 돌아오고. 원래 그 사람인데 그렇게 달라지는 거잖아요. (…)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우리 모두 삶이라는 연극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다 막이 내리면 떠나는 것 뿐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 마땅하다”는 결론에도 이르게 되는 셈이다.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정신 없는’ 연극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덕분이다. 무대에서 현실의 나로 이야기하다 순식간에 무연고자의 딱한 삶에 몰입하는 배우들 덕분에 연극 <유령>은 무사히 결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사로 극이 닫힌다.
“세상은 무대, 사람은 배우. 가끔가다 유령도 있구나. 생긴 것은 사라지고 모인 것은 흩어지나니/제 아무리 후진 역할도/제 아무리 못난 역할도/결국은 다 퇴장이구나.”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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