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사고 9주기…플랫폼에 선 시민들 “죽음의 열차를 생명의 열차로” > 공지사항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외로운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우리의 일터가 위험하다면, 우리의 다크투어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죽음의 순환열차를 생명의 순환열차로 바꾸기 위해 오늘 구의역 열차에 오릅니다.”
19세 하청노동자 김군이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지 9년이 된 28일 특별한 열차가 출발했다. 김군 같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재난 현장을 둘러보는 ‘다크투어’ 행사다. 다크투어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오전 10시 구의역에서 출발해 명일동, 구로역, 신길역, 김포공항역을 차례로 들렀다. 김군을 비롯해 싱크홀에 빠져 숨진 배달노동자, 작업차량에 치여 사망한 철도노동자, 지하철역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사망한 장애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김군의 동료들과 노동자, 시민 등 60여명은 사고가 발생한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묵념하고 헌화했다. 김군 가방에서 나왔던 컵라면도 놓였다. 박현우 서울교통공사노조 부위원장은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다. 감당해야 할 역은 많고,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9주기인 오늘을 기억하는 것은 더는 김군 사고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크린도어에는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사회’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여러 장 붙었다. 연차를 내고 다크투어에 참여한 직장인 이수연씨(32)는 “다음 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타협하지 않고, 가시적인 변화를 이뤄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캠프 중 유일하게 ‘중대재해 없는 공공교통 21대 대선 후보 약속식’에 참여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캠프는 생명·안전업무 인력 확충, 위험업무 2인1조 의무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위험작업 중지권 보장 등을 약속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지하철을 타고 지난 3월 대형 싱크홀 사고로 배달노동자가 사망한 강동구 명일동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사고가 발생한 주유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고인의 동생 박수빈씨는 “오빠의 억울하고 황망한 죽음이 잊히지 않고 이 나라가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에 나서고, 책임자를 밝히라”고 했다. 배달 라이더 황철민씨는 “저도 고인처럼 매일 도로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한민국에선 왜 생명과 안전보다 비용이 우선시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지난해 8월 전철 작업차량을 타고 작업하던 코레일 직원 2명이 사망한 구로역에 도착해 사고 현장을 둘러봤다. 2017년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계단 아래로 떨어져 숨진 신길역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종착지인 김포공항에서는 제주항공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공항의 안전을 담보하는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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