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겸재 정선과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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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04 05:45 조회 2회 댓글 0건본문
금강산에 다녀왔다. 장안사와 박연폭포도 둘러보았다. 명산과 사찰, 한양과 시골 풍광까지 그야말로 와유강산(臥遊江山)이었다. 정선 작품이 총망라된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전’이 성황이다. 디테일을 극대화한 것과 웅건한 것이 번갈아 전시돼 지루할 틈이 없다. 산수는 역시 겸재다.
우주의 중심이 겸재를 통해 조선으로 이동했다. 중국 관념산수화가 SF 영화라면, 그의 산수화는 ‘인간극장’이 포함된 한반도 자연 다큐를 연상시킨다. 아련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고, 우아하면서도 인간미 넘친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공자 말씀대로라면, 겸재는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는 어김없이 소나무가 등장한다. 대표작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는 물론이고 수많은 장소의 배경이 된다. 조선은 소나무의 땅이었다. 편필로 표현한 산수 간의 송림부터, 소나무가 오롯한 주인공이 되어 기운생동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형 작품도 있다. 그가 80세에 그린 ‘노송영지도’는 크기가 147×103㎝이니, 위용이 대단하다. 용틀임하며 몸을 뒤트는 노송의 근기는 겸재의 지나온 인생과 노년의 힘을 보여준다. 사방으로 뻗은 줄기와 가지, 기운찬 솔잎은 마치 웅혼한 기상이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80세 노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산수화 속 인물은 주변 풍광과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 경지를 보여준다. 산수를 올려보고 내려보고, 통과하니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이다. 자연에 사무친 그의 작품은 300여년 전 이 땅의 산하를 오감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개성의 박연폭포도 인상적이다. 화면 전체를 채우며 벼락처럼 쏟아지는 폭포를 거대한 거북 모양의 바위가 받아준다. 그 옆 솟구쳐 오른 암봉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다. 그림이 여기까지였다면, 담대하고 우람찬 기운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폭포 아래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로 인해 웅장한 ‘자연 산수’가 갑자기 훈기 도는 ‘인간 산수’로 바뀐다. 일행 중 하나는 폭포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한다. 다양한 모습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서사가 입혀지고 실감형 증강현실로 전환된다.
그의 작품 앞에서 시공간의 경계는 사라지며 나는 순간이동해 산수 한가운데 서 있다. 눈을 현혹하는 대신 마음과 혼을 빼앗으니, 그의 산수화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이미 300여년 전에 가상현실을 넘어 증강현실을 꿈꾸던 사람, 겸재 정선이다.
우주의 중심이 겸재를 통해 조선으로 이동했다. 중국 관념산수화가 SF 영화라면, 그의 산수화는 ‘인간극장’이 포함된 한반도 자연 다큐를 연상시킨다. 아련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고, 우아하면서도 인간미 넘친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공자 말씀대로라면, 겸재는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는 어김없이 소나무가 등장한다. 대표작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는 물론이고 수많은 장소의 배경이 된다. 조선은 소나무의 땅이었다. 편필로 표현한 산수 간의 송림부터, 소나무가 오롯한 주인공이 되어 기운생동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형 작품도 있다. 그가 80세에 그린 ‘노송영지도’는 크기가 147×103㎝이니, 위용이 대단하다. 용틀임하며 몸을 뒤트는 노송의 근기는 겸재의 지나온 인생과 노년의 힘을 보여준다. 사방으로 뻗은 줄기와 가지, 기운찬 솔잎은 마치 웅혼한 기상이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80세 노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산수화 속 인물은 주변 풍광과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 경지를 보여준다. 산수를 올려보고 내려보고, 통과하니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이다. 자연에 사무친 그의 작품은 300여년 전 이 땅의 산하를 오감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개성의 박연폭포도 인상적이다. 화면 전체를 채우며 벼락처럼 쏟아지는 폭포를 거대한 거북 모양의 바위가 받아준다. 그 옆 솟구쳐 오른 암봉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다. 그림이 여기까지였다면, 담대하고 우람찬 기운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폭포 아래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로 인해 웅장한 ‘자연 산수’가 갑자기 훈기 도는 ‘인간 산수’로 바뀐다. 일행 중 하나는 폭포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한다. 다양한 모습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서사가 입혀지고 실감형 증강현실로 전환된다.
그의 작품 앞에서 시공간의 경계는 사라지며 나는 순간이동해 산수 한가운데 서 있다. 눈을 현혹하는 대신 마음과 혼을 빼앗으니, 그의 산수화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이미 300여년 전에 가상현실을 넘어 증강현실을 꿈꾸던 사람, 겸재 정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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