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업데이트]말도 안 되는 상황에 외쳐요…한화 미쳤다P·계엄 미친N > 공지사항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공지사항

[언어의 업데이트]말도 안 되는 상황에 외쳐요…한화 미쳤다P·계엄 미친N

페이지 정보

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03 11:13 조회 4회 댓글 0건

본문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나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미쳤나봐 지갑 두고 왔어. 나 미친 거 아니야? 깜빡했어.”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쳤나봐’를 외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속에서 비범한 창작물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미친 맛의 신상 과자, 미칠 듯 웃긴 쇼트폼 덕분이다. 흥미진진한 가십을 들었을 때, 친구에게 진짜 좋은 소식이 생겼을 때, 황당한 정치 기사를 볼 때, 심지어 계엄의 순간조차도. ‘미쳤다’는 말이 가장 먼저 새어 나왔다. 점잔이나 교양을 차릴 새도 없이 바로 튀어나오는 본능의 어휘. ‘미치다’는 일상에 가끔 찾아오지만, 일상과는 조금 먼, 어처구니없음과 위대함을 넘나드는 독특한 상태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ㅁㅊ’이라는 초성만으로도 의미 전달에 문제없이 유통될 만큼 흔한 말. ‘미치다’를 표현하는 새로운 표기법이 널리 퍼지고 있다. ‘미쳤다P’ ‘미친N’처럼 단어 옆에 인덱스를 붙이는 방식이다. P는 긍정의 positive, N은 부정의 negative로 ‘미쳤다P’는 미친 듯 좋다, ‘미쳤다N’은 꽤 별로라는 뜻. ‘신곡 미친P’ ‘한화 미쳤다P’처럼 쓰인다. 단어 옆에 P를 살포시 얹는 경우가 N과 함께 쓰이는 상황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미쳤다’는 극단적이고 감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더 빛을 발한다. 한 단어로 복합적 감정을 드러내고자 할 때 ‘미쳤다’만큼 명료한 표현이 있을까? ‘미친 퍼포먼스’ ‘폼 미쳤다’처럼 시대의 선택을 받은 밈 언어들이 증명해왔듯 ‘미치다’는 웹 텍스트로서 희로애락을 담는 만능 어휘로 제 역할을 해왔다. 섬네일, 관심경제, 고자극, 댓글 텍스트… 압축적으로 관심을 끌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미쳤다’만큼 든든한 단어가 없다.
이 다재다능한 언어는 유구한 역사적 논쟁을 견디고 겪었다. 광기, 즉 ‘미쳤다’는 상태는 종교적, 과학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채롭게 해석되어왔다. 중세시대의 광기는 악령의 소행이라 여겨졌고, 근대에선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병리적 현상으로 분류해 격리와 치료의 대상으로 다루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규모 도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Google Ngram 데이터에 따르면 ‘madness’(광기)는 1800년대 도서에 인용된 것보다 훨씬 적게 사용되지만, ‘crazy’(미쳤다)는 21세기에 진입하며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우리는 역사상 ‘미쳤다’를 가장 많이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녹슨 상식과 규범이 경쾌하고 불쾌한 혼란과 함께 무너지고 흐려지며 새로이 건축되는 혼돈의 세상에서 ‘광기’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파격과 창의성의 상징이자 시대의 전형성에 유연하게 저항하는 자세로서 ‘미쳤다’에 P를 붙일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미쳤다’는 양극단의 감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이와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태도의 언어다. 배제와 격리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미쳤다’가 혁신과 창조의 언어로 진화했다.
누군가는 ‘미쳤다P’라는 새 표기를 언어의 풍부한 의미를 납작하게 코드화하는 이분법적 방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처음에 그랬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쳤다P’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긍정 언어의 탄생. 지금 우리는 ‘미쳤다N’의 시대에서 ‘미쳤다P’의 시대로 건너가고 있다. 우리에겐 더 많은 미쳤다P의 순간들이 필요할 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성원산업

  • TEL : 031-544-8566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청신로 1764-34
  • 고객문의
성원산업 | 대표자 : 강학현 ㅣ E-mail: koomttara@empal.com | 사업자번호 :127-43-99687 |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청신로 1764-34 |
TEL : 031-544-8566 | 성원산업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