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인력 쥐어짜기’가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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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11 20:56 조회 1회 댓글 0건본문
일하는 사람을 연구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세요?” 물으면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하는 답이 있다. “여럿이 하던 일을 이제 저 혼자 해서 힘들어요.” 어떻게 해내느냐고 물으면 “어찌어찌 하게 된다”는 답이 오곤 한다.
언젠가부터 한국 조직들은 직원 수를 서서히 줄이고, 일의 양은 서서히 늘리며 조여가야 한다는 암묵적 담합하에 있는 것 같다. 매출 증대 목표를 세운 기업은 당연하게 희망퇴직부터 시행한다. 위에서 목표를 하달하면 현장에선 어떻게든 두드려 맞춰 인력을 줄인다. 잘 마치면 담당자들은 치하를 받고, 경영진 임기가 연장되기도 한다. 일상적 감축도 늘 이뤄진다. 두 명 나간 자리에 한 명만 뽑는 식이다. 하청업체 인력 쥐어짜기는 더 쉽다. 계약 금액을 후려치면 업체가 알아서 인력을 줄여 마진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정부가 들여다본다 해도 나간 사람을 걱정할 뿐 남은 사람을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계속 일이 늘어도 어찌어찌 해낸다. 원료를 싸구려로 대체하면 비난받지만, 인력을 쥐어짜 성과를 내면 “효율성을 높였다”고 칭찬받는다. 피해 입은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마법이 존재할 리 없다.
6월2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 김충현씨가 사망했다. 책상 위 달력에 동그라미 쳐 놓은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이었다. 대선 후보의 책까지 사 읽으며 신중하게 고민한 듯한 그의 한 표는 실행되지 못했다.
6년 전 김용균씨가 숨진 바로 그 현장이기에 “똑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는 개탄이 나온다. 다만 두 죽음에 차이도 있다. 25세 김용균씨는 입사 석 달째, 익숙지 않은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50세 김충현씨는 선반 작업 전문가였다. 소속 하청업체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업무 자체는 9년째 동일했다. 현장에 남긴 서류들만 봐도 그는 자기 업무를 완벽히 파악한 숙련자였다. 그런데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소속 업체 인력은 계속해서 줄어왔다. 그는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를 홀로 개최하고 혼자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현장소장조차 그의 업무를 잘 몰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현장을 찾은 영상을 보니, 노동청과 사측 인사들은 사망 원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묘한 당당함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실 원인이랄 게 없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쥐어짜 놓은 이런 현장에서는 누구나 찰나의 순간 생사가 바뀔 수 있다. ‘2인 1조 원칙’이 있다 해도 한 조를 이룰 ‘2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명이 선반 작업을 하는데 직무가 다른 직원이 와서 지켜본다? 탁상공론일 뿐이다.
인력 쥐어짜기는 산업안전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다. 저출생 대책을 아무리 내놓아도 노동자들은 육아휴직 갈 엄두를 못 낸다. 주 최대 52시간제 완전 적용이 몇년째 미뤄지는 원인, 청년 노동자들이 조직을 불신하게 되는 주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래도 김용균씨 죽음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우리 사회는 한 발짝 나아갔다. 김충현씨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엔 더 근본적인 곳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인력을 쥐어짜서 내는 성과는 인정이 아니라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공공의 감각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 조직들은 직원 수를 서서히 줄이고, 일의 양은 서서히 늘리며 조여가야 한다는 암묵적 담합하에 있는 것 같다. 매출 증대 목표를 세운 기업은 당연하게 희망퇴직부터 시행한다. 위에서 목표를 하달하면 현장에선 어떻게든 두드려 맞춰 인력을 줄인다. 잘 마치면 담당자들은 치하를 받고, 경영진 임기가 연장되기도 한다. 일상적 감축도 늘 이뤄진다. 두 명 나간 자리에 한 명만 뽑는 식이다. 하청업체 인력 쥐어짜기는 더 쉽다. 계약 금액을 후려치면 업체가 알아서 인력을 줄여 마진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정부가 들여다본다 해도 나간 사람을 걱정할 뿐 남은 사람을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계속 일이 늘어도 어찌어찌 해낸다. 원료를 싸구려로 대체하면 비난받지만, 인력을 쥐어짜 성과를 내면 “효율성을 높였다”고 칭찬받는다. 피해 입은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마법이 존재할 리 없다.
6월2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 김충현씨가 사망했다. 책상 위 달력에 동그라미 쳐 놓은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이었다. 대선 후보의 책까지 사 읽으며 신중하게 고민한 듯한 그의 한 표는 실행되지 못했다.
6년 전 김용균씨가 숨진 바로 그 현장이기에 “똑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는 개탄이 나온다. 다만 두 죽음에 차이도 있다. 25세 김용균씨는 입사 석 달째, 익숙지 않은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50세 김충현씨는 선반 작업 전문가였다. 소속 하청업체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업무 자체는 9년째 동일했다. 현장에 남긴 서류들만 봐도 그는 자기 업무를 완벽히 파악한 숙련자였다. 그런데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소속 업체 인력은 계속해서 줄어왔다. 그는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를 홀로 개최하고 혼자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현장소장조차 그의 업무를 잘 몰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현장을 찾은 영상을 보니, 노동청과 사측 인사들은 사망 원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묘한 당당함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실 원인이랄 게 없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쥐어짜 놓은 이런 현장에서는 누구나 찰나의 순간 생사가 바뀔 수 있다. ‘2인 1조 원칙’이 있다 해도 한 조를 이룰 ‘2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명이 선반 작업을 하는데 직무가 다른 직원이 와서 지켜본다? 탁상공론일 뿐이다.
인력 쥐어짜기는 산업안전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다. 저출생 대책을 아무리 내놓아도 노동자들은 육아휴직 갈 엄두를 못 낸다. 주 최대 52시간제 완전 적용이 몇년째 미뤄지는 원인, 청년 노동자들이 조직을 불신하게 되는 주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래도 김용균씨 죽음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우리 사회는 한 발짝 나아갔다. 김충현씨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엔 더 근본적인 곳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인력을 쥐어짜서 내는 성과는 인정이 아니라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공공의 감각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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