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김건희’로 부끄러운 상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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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27 18:38 조회 1회 댓글 0건본문
1999년 숙명여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김건희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50여쪽짜리 논문을 썼다. 선행 연구 문헌과 단행본 몇 권을 대놓고 베껴 지도교수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논문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그는 혼쭐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은 통과됐고 그는 석사 감투를 쓰게 됐다. 박사 논문은 2008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 제출한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 애니타 개발과 시장적용을 중심으로’. 언론 보도와 인터넷 블로그 글 등을 짜깁기한 거지만 역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회원 유지’를 영어로 ‘Member Yuji’라고 표현한 논문은 이보다 한 해 전에 나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숙명여대가 김건희 석사 논문을 취소했다. 최근 대학 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연진위)의 학위 취소 요청을 검토한 끝에 수용했다고 밝혔다. 숙명여대는 민주동문회와 일부 교수들이 김건희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하자 2022년 2월 연진위를 구성해 예비조사에 착수했고, 그해 12월 본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연진위는 수차례 조사 기간을 연장하면서도 결과를 알리지 않고 그저 쉬쉬하기에 급급했다.
국민대는 숙명여대 덕에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다. 국민대는 “박사 학위 과정 입학 시 제출한 석사 학위가 취소된 경우 (박사 학위) 자격 요건을 상실한다”고 밝혔다. 석사 학위가 취소됐으니 박사는 자동 취소라는 것이다. 국민대 역시 학생과 교수, 동문이 들고일어나 김건희 논문이 표절이라고 했지만 외면했다.
사필귀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었다. 해방되자 독립운동하겠다고 나선 격이다. 표절은 개인의 일탈일 수 있지만, 이를 바로잡지 못한 건 대학의 책임이다. 김건희 논문으로 상아탑이 부끄럽다. 부당한 권력에 굴종하는 대학은 진리 탐구의 전당이 아니다. 김건희를 지도하고 비호한 교수들에 대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한국과 태국 간에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 16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27일 결정했다. 이 조항은 인도된 범죄인에 대해 피청구국의 동의가 있으면 인도 당시 승인된 범죄 외의 다른 범죄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허용하는 내용이다.
헌재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청구인 A씨가 “대한민국과 태국 간 범죄인 인도조약 16조1항 등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한국과 태국이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 16조는 ‘조약에 따라 인도된 자는 인도가 허용된 범죄 외에 다른 범죄를 이유로 구금·기소 또는 심리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특정성 원칙을 규정하면서도, 예외 사유 중 하나로 피청구국의 동의와 청구국의 동의요청서 등이 제출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조약의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피청구국의 동의 및 청구국의 동의요청서 등 제출 의무’는 체약국 사이에서 이뤄지는 잠정적·중간적 성격의 외교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외교적 절차에서는 범죄인에 대한 형사절차에서 요구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절차적 보장이 요청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청구인의 주장처럼 동의 요청 때마다 범죄인에게 고지하고 의견 기회 등을 부여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걸려 그사이에 추가적 범죄에 대한 처벌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형사사법 운용의 효율성과 사법 정의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커다란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헌재는 “조약이 해당 범죄인에 대한 동의요청절차 진행 고지 및 의견·자료 등의 제출 기회 부여, 이의신청 절차 등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청구국의 동의 요청 기한을 정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따른 적법절차원칙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는 또 ‘사후적 경합범’에게 형을 선고하는 경우 형을 임의로 감면하도록 한 형법 39조가 위헌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헌재는 “이미 합헌으로 결정한 선례가 있다”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A씨는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국외 도피 생활을 하다가 태국에서 위조여권을 사용했다는 범죄사실로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던 중에 양국 간 인도조약에 따라 2013년 10월16일부터 2016년 10월15일까지 3년 동안 국내로 임시 인도됐다. A씨는 강도치상 등 혐의로 2017년 9월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강도상해 혐의로도 2019년 8월 징역 8년이 확정됐다. 한국 정부는 A씨를 추가 기소하기 위해 2017년 태국 정부에 특정성 원칙 배제 동의요청서를 송부했다. 태국 정부는 2017년 10월 A씨의 임시 인도를 ‘최종 인도’로 전환했다. A씨는 이후 특수강도 등 혐의로도 기소돼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2020년 5월 형이 확정됐는데, 이 사건의 상고심 진행 중 인도조약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애당초 김민석 의원이 이재명 정부의 초대 총리로 지명된 것은 의외였다. 내심 윤석열 내란정부의 무도함을 치유할 이상적 인물을 고대한 때문이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18년 야인 생활과 정계 복귀 이후의 궤적이 석연치 않은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개인적 선호와는 별개로 총리직의 헌법적 무게를 되짚어보면 총리 임명은 서둘러야 한다.
흔히 우리 권력구조를 대통령제로 단정한다. 그리고 쉽게 미국 대통령제를 연상하는 오해를 한다. 그러나 이번 내란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우리 정부 형태는 미국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제헌헌법 이래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변형적 권력구조를 채택해왔다.
이승만 제헌의회 의장의 몽니로 내각제가 대통령제로 바뀌었다는 야사에도 불구하고 제헌헌법의 권력구조를 단순히 대통령제로 단정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출권이 국회에 있었다. 의회 다수파가 행정권의 수반을 선출하는 건 내각제 아닌가? 심지어 제헌헌법에는 합의체로서 국무원이 헌법상 ‘의결기관’이었다. 국정의 기본적 계획과 정책을 비롯해 대통령이 가지는 권한은 국무원의 의결에 따라야만 했다. 내각 회의체가 의결권을 가지는 건 전형적인 내각제적 요소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미국식 대통령제로 통치한 독재자가 되었지만.
6월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도 이전의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과 외형적으로 유사하지만 그 실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통령의 제왕적 지위를 박탈한 것이 현행 헌법이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총리와 현행 헌법의 총리 또한 헌법적 위상이 같을 수 없다. 독재적 권력구조의 총리가 방탄과 대독에 충실한 장식적 지위였다면 독재 극복적 권력구조의 총리는 민주공화적 지위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제 총리는 국회와 대통령의 관계를 조율하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핵심이다. 헌법제정권력이 기획한 대로, 총리는 행정부를 구성하는 국무위원 제청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하고,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가 이루어지는 문서에 독자적으로 부서를 해야 하며, 국정 최고심의기관인 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서 ‘정부 내 협치’의 중심추가 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정부의 2인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헌법은 이와 같은 총리의 헌정적 역할을 고려해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받게 했다. 역시 총리제를 가지지만 그 임명은 대통령의 전권인 프랑스와도 본질적으로 다른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권력구조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총리는 제왕적 대통령제 시대처럼 장식물 취급을 받아왔다. 이번 내란 사태에서도 한덕수 총리는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제대로 반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국회의 신임을 기반으로 하는 총리직의 헌법적 위상을 무시하고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임명권자에게만 충성하며 정작 국회의 다수파를 무시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은 내란방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새 정부의 첫 조각이 내란정부 총리대행의 형식적 지위를 빌려 진행되고 있는 것은 헌정 회복의 차원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인수위 없이 출범해 내란 사태로 거덜 난 나라를 신속히 수습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같은 취지에서, 헌법이 명령하는, 국무회의를 통한 정부 내 협치를 전혀 지키지 않았던 이전 정부와 달리 국무회의를 실질적 공론기관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내란방조 내각의 국무회의를 통한 공론은 민주정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이 “15인 이상 30인 이하”로 정한 국무회의의 구성요건을 명실상부하게 갖추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하루빨리 민주내각을 구성해 헌법정신에 맞게 정부 내 협치를 제대로 구현해야 한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민석 후보자가 하루빨리 임명되어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국무회의도 정상화하며, 행정 각부도 총리의 통할 아래 새 정부의 이념과 정책을 집행하게 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무역전쟁, 국지전의 전방위적 확대 등 국내외 현안이 산적한 현실을 볼 때 대통령 혼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헌법의 권력구조가 정한 대로 총리와 그가 제청해 임명된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을 보좌해 이 난국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게 시급하다. 시대착오적인 내란으로 거덜 난 헌정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다소의 아쉬움은 접어두고라도 총리 임명은 아무리 서둘러도 지나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22일 만인 26일 국회 첫 시정연설을 하며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중 국민의힘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연설 후 국민의힘 의원들과 악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20분간 시정연설을 하며 민생경제 회복과 경제 성장을 위한 추경안 처리에 여야 협조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10시6분쯤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본회의장 입구부터 연단까지 양측으로 서서 이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입구 쪽에 있는 박찬대 의원과 가장 먼저 인사를 한 뒤 김병기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한 명씩 악수를 하며 밝은 표정으로 연단으로 이동했다.
연설 시간 동안 여당에서 총 11회 박수가 나왔다. 몇몇 여당 의원들은 연설이 시작되자 휴대전화로 촬영을 했다. 연설 중 띄운 ‘우리 경제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에는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청색과 적색을 섞은 이미지가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 중 “국민이 주인인 나라” “힘차게 성장, 발전하는 나라” 등을 말할 때 의식적으로 국민의힘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연설 초반 여당 쪽에서만 박수가 나오자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 반응이 없는데 이러면 (제가) 좀 쑥스러우니까”라고 농담을 했다. 이 대통령 말에 여당 쪽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나왔지만 국민의힘은 침묵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끝에 “특히 우리 야당 의원님들께서도 필요한 예산 항목이 있거나, 삭감에 주력하시겠지만, 추가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의견을 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연설 마지막에도 야당 의석을 보며 “우리 국민의힘 의원님들, 어려운 자리 함께해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연설 마지막까지 국민의힘에서는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후 국민의힘 의원석으로 이동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등 의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했다. 대부분 의원이 일어나 이 대통령과의 악수에 응했다. 일부 의원은 이 과정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중앙대 선후배 사이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 과정에서 무언가 말을 주고받은 뒤 웃으며 권 의원 어깨를 툭 치기도 했다. 권 의원은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김민석) 총리 임명 안 된다고 (내가) 두 번 말했더니 (대통령이) 알겠다고 웃으며 툭 치고 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야당 의원들이 악수하자 여당에서는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여당 의원석에서는 “이재명” 연호와 함께 박수가 5분여간 이어졌다.
농촌 지역인 가상 마을 충북 ‘두손리’에는 95년생 유미지(박보영)가 산다. 미지는 학교 청소, 밭일, 슈퍼마켓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노란 단발머리의 그는 늘 웃고 다녀 ‘캔디’라 불린다. 마을 어른들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그를 기특해하면서도 내심 걱정한다.
옛 짝사랑 상대 호수(박진영)의 엄마 염분홍(김선영)이 미지를 따로 불러 건네는 충고는 사회 통념상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는 29일 종영을 앞둔 tvN <미지의 서울>은 사회의 시선에 맞추다간 나다움과 인간성을 잃기에 십상인 사회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내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묻는 드라마다. 멈추고 도망치는 일이 때로는 필요하다고 위로하는 이 작품은 ‘힐링 드라마’라는 입소문으로 1화 시청률 3.6%로 출발해 지난 22일 10화에선 7.7%로 2배 이상 반등하며 높은 화제성을 모았다.
배우 박보영의 1인 2역 일란성 쌍둥이 연기가 극을 이끈다. 미지에게는 미래(박보영)라는 쌍둥이 언니가 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낸 인물이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곧잘 했다. 빛나는 재능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우직함으로 이뤄낸 결과다. 서울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그는 마냥 밝아 보이는 미지와 달리 묵묵하고 속 앓는 소리를 잘 못 한다. 사내 비리 고발에 동참한 이후 1년 넘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할머니 요양비 등 가족 부양을 생각하면 회사를 관둘 수도 없다.
<미지의 서울>은 미래가 자해를 결심할 정도로 코너에 몰린 것을 알게 된 미지가, 똑 닮은 얼굴을 이용해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잠깐 바꿔 살자’고 제안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깍쟁이 미래는 두손리에서 밭일을, 천방지축 미지는 서울에서 회사원 행세를 하게 된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내심 질투하던 자매는 역할을 바꾼 후에야 상대의 삶도 고단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박보영은 미지와 미래, 그리고 서로를 연기하는 두 사람까지 사실상 1인4역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직전을 배경으로 일상을 살던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2021)을 집필한 이강 작가가 극본을 썼다.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과 마음을 울리는 대사로 호평을 받았던 그가 이번엔 ‘그냥 쉬었음’ 청년(구직이나 육아·가사, 통학 등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 50만명을 넘은 현재, ‘그냥’이라는 것은 없다는 듯 청년들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이강 작가는 “겉보기엔 무탈하지만 이미 자신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지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모두가 저마다의 싸움을 치르는 중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극은 실패의 경험이 있거나 쉬어가고 있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적당한 때’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오히려 청년들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준다. 미지는 사실 학교 육상 대표로 금메달을 휩쓸며 빛나는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부상을 입으며, 꿈꿨던 서울로의 대학 진학이 무산된다. 이후 그는 3년간 방에 자신을 가둔 채 은둔한다.
은둔 중이던 미지가 외할머니 월순(차미경)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4화의 대사다. 이불을 푹 덮어쓴 그에게 월순은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다 살려고 싸우는 것 아니냐고. 미지도 살려고 숨은 것이고, 아무리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라고.
<미지의 서울>은 용감한 도망자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 미지·미래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남자주인공들도 이에 해당한다. 미지의 짝사랑 상대 호수는 학창 시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인물이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1등’의 길을 따라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가 된 그는 뒤늦게 이 일이 자신과 맞는지를 고민한다.
미래가 일하게 되는 딸기밭 주인 세진(류경수)은 가까운 이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는 서울살이에 회의를 느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온 인물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등 도시에 지친 주인공이 시골 고향으로 내려와 힐링을 꾀하는 내용은 그간 많았다. 하지만 <미지의 서울>는 두손리를 관념적인 힐링의 공간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농촌’으로서의 마을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세진은 첫해 딸기 농사를 망쳐 골머리를 앓고, 미지는 일당 높은 밭일이라면 눈을 빛낸다.
미화되지 않는 서울과 두손리. 그리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30대 청춘들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쌍둥이의 엄마 옥희(장영남), 미지와 일적으로 얽히는 로사식당 주인 김로사 시인(원미경) 등 중장년 캐릭터의 서사도 풀어내며, ‘다 큰 척’하지만 사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 있건 두려움이 있기 마련인 우리네 삶을 이야기한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모른다.” 미지가 큰마음을 먹을 때마다 외는 주문은 이 드라마가 건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오늘을 너무 두려워만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의 한 발을 내디뎌보자는 것. 하지만 나아가지 못했더라도, 오히려 후퇴했을지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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