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도 해녀와 뉴욕의 한인 극작가의 관계는…‘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의 연극 ‘엔들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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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5-31 05:46 조회 1회 댓글 0건본문
연극 <엔들링스>는 한솔, 고민, 순자 세 해녀가 물질을 나가는 작업장에서 시작된다. ‘엔들링(Endling)’은 한 종(種)의 마지막 생존 개체를 의미한다. 외딴 섬 만재도에 사는 70대부터 90대의 세 해녀들은 매일 해산물을 채취해 생계를 꾸려왔지만, 그 삶을 이어갈 후계자는 없다.
어쩐지 서정적인 이야기가 이어질 것만 같지만, 자꾸 어긋난다. ‘테레비’를 좋아하는 한솔이 “할리우드는 영원해~”라고 말할 때마다 ‘주말의 명화’ 배경 음악이 깔리고, 자신들의 몰골을 설명하노라면 광고 음악으로 익숙한 시아의 ‘샹들리에’가 울려퍼진다.
해녀 할머니들의 신파에 TV 속 익숙한 장면들이 맞물리며 ‘이게 뭐지’ 싶은 위화감이 커져갈 즈음 무대 한 켠에서 유령처럼 ‘하영’이 등장한다. 하영은 지구 반대편 미국 뉴욕에 사는 20대 후반의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다. 극의 시작부터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해녀들의 삶을 설명하던 목소리이자 이 희곡을 쓴 극작가이다. 작품은 만재도의 해녀들과 뉴욕에 사는 하영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정체성이 어떻게 삶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해녀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면 장소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원룸형 아파트로 옮겨간다. 하영과 그의 ‘백인 남편’이 함께 사는 아파트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해녀 이야기가 하영이 작업 중인 희곡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민자이자 동양인 여성인 하영이 백인들로 가득한 미국 주류 연극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블랙 코미디로 급선회한다.
“난 매수돼 이 희곡을 쓴 거야/백인들의 관심과 백인들의 부동산에 넘어간 거야/난 연극을 위해 내 피부색을 팔고 싶어/한 점 부동산을 위해 내 피부색을 팔고 싶어”(하영)
하영은 백인들을 만족시킬 신비하고 이국적인 대상으로 ‘해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의 저작 의도를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소수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떠올리게 한다. 극에선 이를 새하얀 ‘백인성’을 풍자하는 공연으로 풀어내는데, 해녀들이 비트에 몸을 맡기고 미역으로 치어리딩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순자의 대사가 상황을 압축한다. “와 비현실성 미쳤다”
<엔들링스>는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감독 셀린 송의 대표작이다. 하영은 셀린 송의 한국 이름을 딴 동명의 인물이다.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작가 스스로를 인물화해 극 속에 넣은 셈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본 관객이라면 두 작품을 관통하는 시공간의 접속이나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계 외국인이 영어로 발표한 작품을 한국인들이 한국 무대에 번안해 올리면서 생겨나는 차이들도 의식되는 지점이다.
한바탕 웃다보면 문득 셀린 송이 코미디 영화 <넘버 3>의 감독 송능한의 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도 된다. “이 연극은 내 정체성만큼이나 특이하고 다양하다. 난 한국인이지만 내 연극 속 해녀들만큼 한국인으로 느끼진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캐나다인이거나 미국인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 난 한국 TV를 보고 미국 TV의 각본을 쓴다. 내 정체성은 내가 나의 온전한 작가로, 나만의 언어로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다.”(2019년 초연 당시 셀린 송의 글)
두산아트센터에서 6월7일까지.
어쩐지 서정적인 이야기가 이어질 것만 같지만, 자꾸 어긋난다. ‘테레비’를 좋아하는 한솔이 “할리우드는 영원해~”라고 말할 때마다 ‘주말의 명화’ 배경 음악이 깔리고, 자신들의 몰골을 설명하노라면 광고 음악으로 익숙한 시아의 ‘샹들리에’가 울려퍼진다.
해녀 할머니들의 신파에 TV 속 익숙한 장면들이 맞물리며 ‘이게 뭐지’ 싶은 위화감이 커져갈 즈음 무대 한 켠에서 유령처럼 ‘하영’이 등장한다. 하영은 지구 반대편 미국 뉴욕에 사는 20대 후반의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다. 극의 시작부터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해녀들의 삶을 설명하던 목소리이자 이 희곡을 쓴 극작가이다. 작품은 만재도의 해녀들과 뉴욕에 사는 하영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정체성이 어떻게 삶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해녀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면 장소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원룸형 아파트로 옮겨간다. 하영과 그의 ‘백인 남편’이 함께 사는 아파트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해녀 이야기가 하영이 작업 중인 희곡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민자이자 동양인 여성인 하영이 백인들로 가득한 미국 주류 연극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블랙 코미디로 급선회한다.
“난 매수돼 이 희곡을 쓴 거야/백인들의 관심과 백인들의 부동산에 넘어간 거야/난 연극을 위해 내 피부색을 팔고 싶어/한 점 부동산을 위해 내 피부색을 팔고 싶어”(하영)
하영은 백인들을 만족시킬 신비하고 이국적인 대상으로 ‘해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의 저작 의도를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소수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떠올리게 한다. 극에선 이를 새하얀 ‘백인성’을 풍자하는 공연으로 풀어내는데, 해녀들이 비트에 몸을 맡기고 미역으로 치어리딩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순자의 대사가 상황을 압축한다. “와 비현실성 미쳤다”
<엔들링스>는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감독 셀린 송의 대표작이다. 하영은 셀린 송의 한국 이름을 딴 동명의 인물이다.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작가 스스로를 인물화해 극 속에 넣은 셈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본 관객이라면 두 작품을 관통하는 시공간의 접속이나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계 외국인이 영어로 발표한 작품을 한국인들이 한국 무대에 번안해 올리면서 생겨나는 차이들도 의식되는 지점이다.
한바탕 웃다보면 문득 셀린 송이 코미디 영화 <넘버 3>의 감독 송능한의 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도 된다. “이 연극은 내 정체성만큼이나 특이하고 다양하다. 난 한국인이지만 내 연극 속 해녀들만큼 한국인으로 느끼진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캐나다인이거나 미국인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 난 한국 TV를 보고 미국 TV의 각본을 쓴다. 내 정체성은 내가 나의 온전한 작가로, 나만의 언어로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다.”(2019년 초연 당시 셀린 송의 글)
두산아트센터에서 6월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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