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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응답하려는 자와 응징하려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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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03 20:50 조회 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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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던진 ‘소수자 시위’ 해법‘정치’ 아닌 ‘치안’의 문제로 풀어
책임있는 정치가, 목소리에 ‘응답’목소리를 응징하는 사람은 안 돼
대선 후보자 토론회도 모두 끝나고 사실상 투표만 남았다. 도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한심해하면서도 세 차례 토론회를 다 보고 말았다. 토론회 전체를 통틀어 그나마 의미 있다고 생각한 시간은 40초 정도다. 그것은 두 번째 토론회 날 이준석 후보의 질문에 권영국 후보가 답변하던 장면에서 나왔다.
이준석 후보는 전장연과 동덕여대 사태를 언급하며 권영국 후보에게 “대통령이 된다면 사회질서를 훼손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권영국 후보는 “질문이 잘못됐다”며 “전장연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왜 발생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것”이라며 “이준석 후보는 결과에 따른 갈등 사항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준석 후보가 다그쳐 물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말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왜 장애인들은 출근길 지하철 행동에 나섰고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를 봉쇄하고 건물을 점거했을까. 이준석 후보가 나중에 물은 것을 처음에 물었다면, 그것도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에게 물으며 답을 찾아갔다면 틀림없이 지금보다 나은 정치인이 됐을 것이다. 사회질서를 어긴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가 권영국 후보에게 던진 것은 정치(politics)가 아니라 치안(police)의 물음이다.
‘정치’와 ‘치안’은 한 뿌리에서 나온 말이지만 원리상 대립한다. 정치철학자 랑시에르에 따르면 치안은 세계를 나누고 몫을 배정하는 일이다. 물론 나누고 배정한다는 것은 차단하고 배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치안 담당자는 사회적 공간 각각의 기능, 자리, 존재 양식에 맞지 않는 일들을 통제하고 몫이 없는 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정치는 오히려 질서에 맞지 않는 일들에서 시작된다. 해당 공간에 부합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몫을 가질 수 없는 자들이 몫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린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나누고 배정하는 일, 차단하고 배제하는 일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치안은 이것을 차단하지만 정치는 이것을 구축한다. 정치가란 사회질서의 위반이 일어난 곳, 사람들 사이의 불화가 있는 곳에 뭔가 볼 것이 있고 들을 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을 문제가 아니라 문제제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후보의 이야기를 듣다가 40년 전 한 장애인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단속됐던 일이 떠올랐다. 장애해방 열사 김순석의 이야기다. 그는 작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남대문시장에 납품했던 사람이다. 1983년 어느 여름날 그는 휠체어를 타고 길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횡단보도 쪽으로는 턱이 있어서 갈 수가 없었다. 별수 없이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넜다. 그러다가 교통순시원에게 잡혔다.
‘아무리 그래도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되지.’ 치안의 관점에서 틀린 말은 없다. 그런데 이 틀림없는 말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아내에 따르면 경찰서에서 돌아온 날 아침 그는 공구며 금형이며 제품들을 모두 다 때려 부쉈다고 한다. “마치 미쳐버린 듯했습니다.”
횡단보도로는 갈 수가 없고,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 것은 불법이다. 그는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배정받지 못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서울의 거리는 이동하는 장애인을 사실상 금지하고 불법화하고 있었다.
나중에 김순석은 서울시장 앞으로 편지 다섯 장을 썼다. 그는 식당 문턱 앞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돌아섰던 이야기,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낯선 이의 허리춤을 잡고 매달렸던 이야기, 자신 앞에서 서지 않는 빈 택시들을 지켜보며 눈물 흘린 이야기 등을 썼다.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서울의 거리는 도무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든다”고 썼다. 그는 그렇게 써놓고 음독자살했다.
‘그래도 무단횡단은 안 되지.’ 이것은 치안의 논리다. ‘그럼, 당신은 사회질서를 훼손하는 일을 옹호할 건가.’ 이것은 치안의 물음이다. ‘미온적으로 대처하니까 나쁜 선례가 쌓이는 거다.’ 이것은 치안의 분석이다. 모두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의 책무는 무단횡단한 장애인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있지 않고, 그가 왜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사회질서를 훼손하기 전에 사회질서가 그의 삶을 훼손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에 있다.
책임(responsibility) 있는 정치가란 목소리에 응답하는(response) 사람이지 목소리를 응징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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