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미륵산성, 축조 시기 베일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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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주임 작성일 25-06-12 06:04 조회 1회 댓글 0건본문
전북 익산 미륵산성에서 백제 사비기(泗沘期)로 추정되는 저수조와 목간 등 산성의 축조와 운영 시기를 규명할 수 있는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특히 간지(干支)가 적힌 목간이 함께 발견되면서 그간 통일신라 시기로만 인식돼 온 미륵산성의 백제기 축성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익산시는 전북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지난해부터 실시한 미륵산성 정상부 아래 평탄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오는 11일 오전 11시 현장에서 공개 설명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기준성(箕準城)으로도 불리는 미륵산성은 해발 430m 미륵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사면과 계곡을 따라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22m에 달한다. 199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조사에서는 동문지와 남문지, 치성(성벽의 돌출된 방어시설), 건물지, 집수시설 등이 확인됐으나 모두 통일신라 시기로 추정돼 백제 관련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발굴은 기존 조사와 달리 백제기 흔적을 명확히 보여주는 유물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와 연구원은 미륵산 정상부인 장군봉 아래 평탄지에서 확인된 성토 대지층과, 그 안에 파묻힌 원형 석축저수조에 대한 전면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석축저수조는 직경 6.7m, 잔존 높이 1m가량의 규모로 확인됐으며, 4차례에 걸쳐 수·개축된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수원이 부족한 산성 정상 인근의 입지를 고려해 이중 석축 구조와 나뭇잎, 삿자리, 고운 점토 등을 이용해 최대한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축조된 방식이 눈길을 끈다.
저수조 내부에서는 백제 삼족토기, 개배, 병형 토기, 단경호 등 백제계 토기를 비롯해 가야의 계심발형 토기, 고구려계 장동호·암문토기·옹형토기 등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됐다. 또 목간과 가공목, 건축 부재 등 다량의 목재 유물도 함께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병신년 정월 기…(丙申年正月其…)’라는 간지 명이 묵서된 목간이다. 학계는 이 목간의 간지를 바탕으로 해당 저수조의 축조와 사용 시기를 백제 사비기 중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비기 병신년은 서기 576년이 해당돼, 미륵산성의 축성 시기를 6세기 중후반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근거로 평가된다.
익산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은 미륵산성이 단순한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백제 사비기의 중요한 군사시설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며 “향후 추가 조사와 정밀 분석을 통해 백제 후기 산성의 실체와 군사 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익산시는 전북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지난해부터 실시한 미륵산성 정상부 아래 평탄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오는 11일 오전 11시 현장에서 공개 설명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기준성(箕準城)으로도 불리는 미륵산성은 해발 430m 미륵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사면과 계곡을 따라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22m에 달한다. 199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조사에서는 동문지와 남문지, 치성(성벽의 돌출된 방어시설), 건물지, 집수시설 등이 확인됐으나 모두 통일신라 시기로 추정돼 백제 관련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발굴은 기존 조사와 달리 백제기 흔적을 명확히 보여주는 유물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와 연구원은 미륵산 정상부인 장군봉 아래 평탄지에서 확인된 성토 대지층과, 그 안에 파묻힌 원형 석축저수조에 대한 전면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석축저수조는 직경 6.7m, 잔존 높이 1m가량의 규모로 확인됐으며, 4차례에 걸쳐 수·개축된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수원이 부족한 산성 정상 인근의 입지를 고려해 이중 석축 구조와 나뭇잎, 삿자리, 고운 점토 등을 이용해 최대한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축조된 방식이 눈길을 끈다.
저수조 내부에서는 백제 삼족토기, 개배, 병형 토기, 단경호 등 백제계 토기를 비롯해 가야의 계심발형 토기, 고구려계 장동호·암문토기·옹형토기 등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됐다. 또 목간과 가공목, 건축 부재 등 다량의 목재 유물도 함께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병신년 정월 기…(丙申年正月其…)’라는 간지 명이 묵서된 목간이다. 학계는 이 목간의 간지를 바탕으로 해당 저수조의 축조와 사용 시기를 백제 사비기 중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비기 병신년은 서기 576년이 해당돼, 미륵산성의 축성 시기를 6세기 중후반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근거로 평가된다.
익산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은 미륵산성이 단순한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백제 사비기의 중요한 군사시설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며 “향후 추가 조사와 정밀 분석을 통해 백제 후기 산성의 실체와 군사 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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